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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대 그리스 철학 정리

by bluecircle 202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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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글에서는 간단한 철학의 정의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이번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대 그리스 철학
고대 그리스 철학은 말 그대로 고대 그리스에서 흥한 철학을 총칭한 단어입니다. 단지 현재에 말하는 철학뿐만이 아닌, 수학이나 자연철학을 포함한 학문이나 학구적 영위를 포함합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그리스 철학의 뿌리를,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시작되는 이오니아학파와 피타고라스로부터 시작되는 이탈리아학파로 나누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전자의 계통으로, 에피쿠로스, 파르메니데스, 제논들은 후자의 계통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층적으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철학에는 논리학, 윤리학, 자연철학의 세 개의 분야가 있으며, 먼저 자연철학이 발달하고, 그다음에 소크라테스가 윤리학을, 제논이 논리학을 정립하며, 윤리학은 아카데메이아 학파, 앨리스 학파, 키니코스학파, 메가라 학파, 에리트레아 학파, 키레네 학파, 소요학파, 궤변학파,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이렇게 10개의 학파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철학이란 말 자체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피타고라스라고 전해지는데요. '철학자'를 포괄한 '지자(소포스)'는 '소피스트'라고도 불렸고 시인도 여기에 포함되었습니다.



2. 고대 그리스 철학의 계보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주장하는 초월론적인 세계의 존재론을 부정하였고 이데아를 사물 중심에 내재하는 것이라 주장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사물은 이데아와 그 바닥으로서의 형상 등 두 요소로 인하여 성립하는 것이며, 형상이 그 이데아를 온전히 실현하려고 하는 곳에 변화, 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세운 학교 아카데메이아를 그가 죽은 후에 떠나 리 케이온에 다니면서 강의하였으며, 후세에 그의 학파를 소요학파라고도 불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지식을 모두 포함하려는 희망을 품은 최초의 사람이었고, 그의 연구는 정치, 자연 과학, 역사, 문학, 교육 등을 합쳤습니다.

플라톤은 키니코스학파와 키레네 학파를 비롯한 '불완전한 소크라테스 무리'에 비해 진정한 의미의 철학의 길을 걸은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은 자신이 집필한 대화편(對話篇)에서 초기에는 소크라테스를 중점으로 하여 주로 도덕적인 개념을 세밀히 규정하고자 노력하였지만, 그 후 점점 형이상학적, 인식론적으로 심화하여, 모든 감성적인 것의 원형으로서 영원불멸한다는 의미의 이데아에 관한 설을 주장하였습니다. 플라톤은 계속하여 유전 변화하고 우리의 감관 지각의 대상인 현실 세계를 넘어선 곳에 그 원형이자 이상인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다음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에 대립하여 장인이 장인으로서의 훌륭함을 수행하기 위해선 그 기능 또는 기술에 대해서 잘 숙지하여야 하듯이, 인간으로서의 훌륭함, 즉 덕을 수행하기 위해선 그것에 대해서 잘 숙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소크라테스는 인심을 거스른 사고로부터 각성시키려고 한 그의 태도 때문에 근시안적인 아테네의 주권자로부터 "신을 부정하고 청년들을 현혹하였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기원전 399년 독배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크라테스가 오사의 생애를 마친 뒤에 그의 제자들은 분열하여, 스승으로부터 단순히 도덕적 자주만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진정한 철학적 견지를 유지하려는 일파로 분파되었습니다. 전자에 해당하는 학파는 키니코스학파와 키레네 학파입니다. 키레네 학파는 '최고선은 향락이다'라는 쾌락주의 철학을 창도하였고, 키니코스학파는 무욕이 진정한 덕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고대 수도승으로서 각지를 방랑하면서 이 원칙을 실천하였습니다.



3. 헬레니즘 철학
고대 그리스는 헬레니즘 시대로 들어섰고, 국가적 지반의 상실과 더불어 개인주의는 결정적 승리를 이루고 자기 자신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던 개인을 위하여 실천적 생활 규범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시대 이후에 발생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학파는 물리학이나 형이상학이 있었지만 관심사는 윤리학, 특히 개인 윤리학이었습니다. 회의 팍 파는 외계의 모든 것을 의심하였고, 에피쿠로스학파는 진정한 내적 쾌감을 추구하였으며, 스토아학파는 뇌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족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 학파들의 활동은 수백 년 동안 큰 영향을 주었지만, 이러한 고대 철학은 신지학에 의하여 완결되었습니다. 모든 구제는 신앙에 의하여 획득할 수밖에 없었지만 또 한 번, 여러 선행학설을 기초로 하여 철학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사물의 정신적 본으로서 이데아를 내세우고, 이데아의 창조자로서는 신을 생각하고, 신비적 직관을 통하여 신의 경지를 체험하고자 한 것이 신플라톤학파의 근본 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출현하자 압도되었습니다.



4. 그 후 중세
중세로 들어서서는 로마의 몰락과 함께, 그리스 철학은 서양에서는 잊혀 갔습니다. 서양에서 그리스어 읽는 법을 아는 사람도 적게 되었고, 이슬람교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들은 그리스 철학의 사본을 수집하고, 번역가를 고용하여 이슬람교의 문맥 안에서 그리스 철학을 다시 재해석했습니다. 그것이 중세 성기에 유럽에 전파해 아라비아어로부터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그렇게 그리스 철학이 서양에서 부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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